우연히 틀게 된 지루한 명화 시리즈. 그 방송 프로그램에서는 히치콕 시리즈를 방영하고 있었다. 평소 같았으면 그냥 지나쳤을 텐데 나도 모르게 그때 나오고 있었던 영화를 끝까지 보고 있었다. 그 작품이 바로 <사이코>다. 히치콕의 명성을 알고 있었지만 히치콕 영화를 무수히 패러디한 다음 세대 감독들의 영화에 물들어져 있던 나는 수많은 감독들에게 영감을 준 명작 ‘사이코’의 가치를 그 당시에는 정확히 알 수 없었다. 그저 반전 영화의 뻔한 공식을 따른 영화라고만 생각했다. ‘사이코’가 뻔한 공식의 원조였다는 것을, 그 당시에는 정말 파격적인 영화였다는 것을 나는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하지만 충분히 지나쳤을 법도 했는데 왠지 모르게 그 영화를 끝까지 보고 있었던 이유는 아직도 모르겠다. 어린 나도 감독의 천재성을 알게 모르게 인지하고 있었던 것 아닐까?라는 짐작만 가게 된다.   

그러다 최근에 히치콕에 대한 영화를 찍는다는 것을 듣게 되었고 이 영화의 원작이 된 책을 찾다가 <완벽한 서스펜스의 탄생 히치콕과 사이코>를 알게 되었다. 책은 제목 그대로 히치콕과 사이코에 대한 논픽션이다. ‘사이코’의 그 당시 제작진들과 배우들의 인터뷰와 당시 언론에서 볼 수 있었던 히치콕의 발언들을 통해 ‘사이코’의 제작 과정을 재구성한다. 책에서 히치콕은 관객들이 ‘사이코’를 보면서 그들 스스로가 관음증 환자 되어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게 영화를 찍었다는 내용이 나온다. 저자가 그러한 히치콕의 정신을 잇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책을 읽다 보면 ‘사이코’가 상영되기까지의 전반적인 제작 현장을 몰래 옆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그리고 이 제작과정 중심에 히치콕이라는 인물이 있다.

 

왜 히치콕은 천재라 불리고 지금까지 회자 되고 있는 것 일까? 책에서 비쳐진 히치콕은 자신의 능력에 대해 자부심도 강하고 부르주아 정신이 투철했으며 독특한 취향을 갖고 있는 괴짜였다. 히치콕이 영화를 만들 때 마다 영화 소품을 제작하는 걸 좋아하고 배우들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이 책을 읽고 얻은 수확이었다. 이런 개별적인 특징이 모여 만들어진 히치콕의 형상은 새로운 패러다임의 영화를 찍기 위해 누구보다 고뇌하고 노력하는 열정적인 창작열을 가진 중년 아저씨였다. 전문가들은 어떤 예술이 더 훌륭한지에 대해 많은 논쟁을 하며 나 역시 여러 문화생활을 하면 예술과 광기의 흐릿한 경계에 당혹스러울 때도 있지만 이 책을 보고 나서 훌륭한 예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기준 중 하나가 남들이 쉽게 포착 할 수 없는 시선으로 그들에게 영감을 줄 수 있는 작품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라는 생각이 스쳐갔다.

 

사이코의 제작과정을 통해 본 히치콕. 그의 새로운 작품에 대한 열망과 치열한 노력은 앞으로 내가 어떤 삶을 살아갈지에 대해 많은 영감을 줬다. 이 사실 하나만으로도 히치콕은 나에게 정말 훌륭한 멘토임은 분명한 것 같다.

 

   글 / 산업시스템공학과 2학년조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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