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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3. 8. 14:30

서평단 트레바리 “피로사회” 후기

 12월 13일 목요일 오후 6시. 중도 지하2층의 세미나실에 모인 10명의 사람들. 시험공부로 정신없을 시간이었기에 다들 지친 것 같았지만 모두의 눈은 초롱초롱 했다. 바쁜 대학생활 와중에서도 한 달에 한번 트레바리 사람들과의 만남은 나에게 있어 청량제와 같다. 전공을 떠나 이 순간만큼은 책 이야기고, 책 생각뿐이다.

 

“피로사회”라니!

  이 세상이 피곤하다는 것일까? 사회가 피곤을 준다는 것인가?
처음 읽는 사람에게는 말이 무척 어렵고 복잡할 수 있었다. 하지만, 트레바리의 멘토 박용재 선생님의 해설을 들으면서 더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었다. 이 피로사회의 내용은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에게 따끔한 일침을 준다. 

 우리는 흔히 아무것도 안하는 것, 머뭇거리는 것, 하지 않는 것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 이 세상을 살아나가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끊임없이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심화되어 멀티태스킹이 당연한 사회가 되었다. 우리는 스마트폰을 만지며 공부를 한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공부를 한다. 바쁜 사회 속에서 많은 일을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서 멀티태스킹을 당연한 것으로 생각해왔다. 

 하지만 멀티태스킹은 동물적인 삶을 의미한다. 늑대는 먹이를 먹으면서 자신을 해치는 짐승이 있는지 끊임없이 경계하면서 먹는다. 따라서 먹는 것을 즐겁게 먹지 못한다. 그들에게는 정신적인 이완이 없다. 끊임없이 긴장하며 살아야한다.

 한병철이 말하는 피로사회는 나아가서 누군가 통제 하에 일을 했던 과거와 달리 현대사회는 스스로 자신을 통제하여 누가 시키거나 보지 않아도 일을 하며, 스스로가 규율에 맞춰서 일을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제는 억압이 없지만 스스로를 통제하며 사는 사회가 되었다.

 우리자신은 어떠한가? 우리는 남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 자발적으로 공부한다. 시키지 않아도 새벽에 일어나 영어 학원을 다니고, 밤늦게 까지 공부한다. 그렇게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한 것이란 판단에서 자신에게 일을 스스로 시키고 있는 것인가? 스스로 회의하고 질문해야 할 필요가 있다.

 원인을 찾아보면 역시나 후기자본주의의 자연스러운 현상이라고 한다. 후기자본주의는 지배계급이 자본가가 아닌 고등교육을 받은 지식전문가가 지배계급이 되는 시대이다. 따라서 이제는 초등학교 때부터 지배계급(지식전문가)이 되기 위한 경쟁을 한다. 교육수준이 신분을 결정하는 사회이기 때문에 누구나가 공부에 매달리게 되며, 또한 사회에 진출할 경우 근무외 수당이란 것이 생기면서, 일을 하라는 통제가 없어도 자연스럽게 야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타율적인 착취가 아니라 자율적인 착취이다.

 

해결책은 “?” 이다!

 우리는 스펙의 시대를 살고 있다. 직무와 관련이 그렇게 많지 않지만 남들에게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격증을 준비하고, 영어를 배우기 위한 어학연수가 아닌 보여주기 위한 어학연수를 가는 것은 예삿일이 아니다. 왜 우리는 이런 것에 목을 매고 있는 것인가? 

그런 것에 관해 혹시 의문을 가져본 적이 있는가? 의문을 가지고 머뭇머뭇 거렸다면 그것은 쓸데없는 활동이 아니라 자연스러운 것이다.

우리는 대학생이다. 우리는 젊다. 젊다는 것의 장점은 무엇인가?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것. 처음부터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우리는 융통성이 있다. 이것은 대학생의 특권이다. 즉, 고정관념을 깨는 게 쉽다는 뜻이다. 고정관념을 깨면 다른 세계를 볼 수 있게 해준다. 비록 그동안 생각해왔던 것을 모두 허물어뜨리기 때문에 벌거벗은 것같이 두려울 수 있지만, 그것이 오히려 자신을 성장시키는 계기가 될 것이다.

 우리는 지식의 역사를 부정에서 출발한다. 즉, 모든 지식은 회의론에서 시작하였다. 회의론이란 것은 뭐든지 의심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회의론자 데카르트는 고정관념을 깨고 자신의 지식을 찾는 여행을 하기위해 내 자신이 생각하므로 ‘존재 한다’ 에서 시작하였다. 그러므로 회의하며 머뭇거리는 사람을 무능력자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그런 사람을 그렇게 바라보는 것은 이 시대의 틀(패러다임)에서 생각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패러다임을 깨기 위해서는 의문과 회의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며, 이런 과정을 통해서 우리는 남들과는 한 차원 앞서서 생각하게 될 것이다. 우리는 오히려 피해왔던 빈둥빈둥하며 주저하고 회의하는 태도가 오히려 우울감을 벗어나게 해줌을 깨달아야 한다.

 

피로가 아닌 행복해지기 위한 시작.

   
 우리는 이유 없이 우울하다. 우울하다는 것은 대상이 있어야 하지만 이 세상은 내 자신이 착취대상이기 때문에 대상이 없고, 그런 와중에도 내 자신은 점차 소진되어 간다.
 누군가가 이렇게 물을 수 있다. “그럼 아무것도 하지 말고, 도태되란 말인가요? 세상은 빨리 흐르고 있고, 사람들은 이렇게 치열하게 살고 있는데요?”
 이렇게 생각할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아예 정지해 있으란 것이 아니다. 행동으로 바로 실천하라는 것이 아니다. 한번쯤은 머뭇거려보자는 것이다. 머뭇거리는 것이 나쁘지 않다는 것이다. 이 사회 환경이 머뭇거리는 것조차 낭비라고 생각하는 세태가 문제다.
 또한 창의적인 생각들도 우리의 정신적인 영감과 창조적인 생각은 이완된 상태에서 나온다. 긴장하고 경직된 상태에는 새로운 생각이 나오기 힘들다. 이렇게 이완은 우리에게 뛰어난 영감을 주기도 한다.
 지금도 여러 가지 대외활동과 각종자격증, 어학연수 등 방학을 방학으로 생각하지 않고 바쁘게 보내는 학생들이 있을 것이다. 그런 학생들에게 말하고 싶다.

“한번쯤은 머뭇거려보세요. 지금 당신이 하고 있는 것이 당신에게 큰 도움이 되고 있는 것인가요? 성과를 이루기 위한 수단인가요? 당신의 마음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가요?”

 

 1시간 가량의 토론이 끝나고 한숨을 쉬었다. 다들 시험공부가 기다리고 있는 피로사회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이야기 했다. 뒷풀이를 하긴 했지만, 곧 있을 시험이란 압박 때문에 편하게 뒷풀이를 하지 못하는 것을 보며, 나 또한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동안 방학이란 것은 쉬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해왔다. 전역하고 바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자격증공부를 하며 복학준비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살아야 옳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피로사회를 읽으며 나도 조금은 이완해도 되지 않을까란 생각을 해보았다. 그동안의 시간이 있다면, 담양의 메타세콰이어 길도 걷고 싶고, 영화도 미친 듯 보고 싶고, 편히 소파에 앉아 책도 읽고 싶다고 생각해보았다.
 대학생활을 지내고 보니 어느덧 4학년이 되었다. 비록 내게 남은 시간은 많지 않지만, 조금이나마 피로를 덜 수 있기를, 2013년에는 숲을 처음 들어갔을 때의 그 상쾌함을 느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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