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절한 조선사> 글쓴이 푸른깨비를 직접 만나다

- 리더스가이드 리뷰어, 동국대 학생들이 함께한 저자간담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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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형국 지음 | 미루나무 펴냄
소소한 것들에게 이름을 붙여주는 친절한 조선사 <친절한 조선사>는 우리가 알고 있는 시각 그 너머의 조선사를 새롭게 보여주는 책이다. 단편적인 사실에 머무르거나 대중적인 흥미만을 불러일으키는 많은 역사대중서들과 달리, 재미를 바탕으로 그 해석과 관점을 진지하게 풀어내고 있다. 지나간 역사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으며, 현재 우리 삶과 어떻게 연관되어 있는지를 살펴본다. 이 책은 읽는 사람을 소외시키

어린이, 학부모, 대학생, 외국인이 다양한 관심을 보인 <친절한 조선사>

학생 : "나폴레옹 전쟁 때 병사들의 편지가 미시사적 가치가 많다고 하셨는데, 제가 확인한 바로는 장교들의 편지와 병사들의 편지가 관점이 전혀 달랐는데 구분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사회 : 죄송합니다만, 어린이부터 어른까지 많은 사람들이 참여한 대중강연이라 그처럼 심도 있고 전문적인 질문은 강연 후에 뒤풀이에 하시는 것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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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 자신을 '사학도'라고 소개한 박소연 씨는 간담회에서 저자와 뜨거운 토론을 전개했다. 리더스가이드 리뷰어들과 동국대학교 학생들 30여 명이 진지한 표정으로 간담회에 참여했다.>


동국대학교 중앙도서관에서 열린 '<친절한 조선사> 저자와의 대화'(도서포털 리더스가이드와 동국대학교가 공동주최)에서는 열정적인 대학생들이 관심 분야에 따라 깊이 있는 질문을 던져 사회자와 저자를 당혹케 했다. 심지어 토론 중간에 끼어들어 반론을 제기하여 현장의 분위기는 매우 뜨거웠다. 재미있는 질문도 많았다. 애써 익힌 한국말로 한국외대를 다닌다고 소개한 한 일본인은 무척이나 궁금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그 칼 어디서 샀어요?"라는 엉뚱한 질문을 던졌다. 돌아온 대답이 가관이다. "도검회사에서 주문해서 샀는데요." 청중들이 와아 하고 웃는다. 초등학교에 다닌다는 김민지 학생은 "책 표지 그림이 저자 선생님을 무척 닮았는데, 직접 고르신 건가요?" 하고 물었다. 즉석에서 사회자는 저자에게 책을 잠깐 들어줄 것을 요청했다. 그러고 보니 무척 닮았다. 카메라 플래쉬가 터졌다. 재미있는 질문을 해준 덕에 민지 학생에게 '애기화살'인 '편전'이 선물로 돌아갔다. 큰 화살을 네 쪽으로 갈라서 애기살이라고 이름붙였다는 데 작다고 무시할 수는 없다. 이래뵈도 보통 화살보다 초속 10m가 더 빠르다. 비거리는 어떤가. 보통 화살이 300m인 데 비해 '애기살'은 600m다. 이 선물을 준 저자는 학생이 애기살처럼 똑똑하고 다부진 어른이 되라는 마음인 듯했다.

오마이뉴스에서 '푸른깨비'라는 필명으로 활약하고 있는 최형국 씨는 등장할 때부터 '도인의 풍모'를 풍겼다. 게다가 칼까지 차고 왔으니 눈에 띄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친절한 조선사>(다산북스)는 저자가 '푸른깨비의 재미있는 역사이야기'라는 제목으로 2006년 7월부터 이듬해 9월까지 오마이뉴스에 연재한 기사를 책으로 펴낸 것이다. 때문에 이 책을 처음 본 독자는 책 목차가 마치 신문기사와 같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와 같은 사정 때문이다. 외모에서도 풍기듯 저자는 특이한 이력의 소유자다. 석사를 인터넷 마케팅을 전공했으면서 박사는 역사를 했다. 그래서 박사 전공할 때 무한한 사료에 짓눌려 5년을 '재수'했다는 후문이다. <친절한 조선사>가 별로 친절하지 않았다거나, 제목에 낚여 지적 호기심이 2% 덜 자극되었다고 생각하는 독자라면 기대하시라. 이제 좀 '깊이 들어간' 후속작을 준비하고 있다는 귀띔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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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 도검 회사에서 직접 주문하고 일일이 고증해 얻었다는 진검을 보여주었다. 살짝 갖다댔는데 종이가 정말 종이처럼 잘려나갔다.>


나 낚시질했다는 거 인정한다. 그러나

이번 간담회는 여타 간담회와는 조금 다르다. 도서포털 리더스가이드가 26명의 리뷰어가 책을 집단 평가한 후에 저자를 불러 직접 이야기하는 형식을 띤다. (
오마이뉴스 4월11일자 "진정으로 '친절한 조선사'가 되려면") 리뷰어들의 평가가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는 것을 인지한 듯 저자는 '낚시글' 이야기를 먼저 꺼냈다. 낚시글이 맞단다. 하지만 거기에는 가슴 저미는 사연이 있었다. 처음에 책을 펴내면서 저자 역시 "가볍고 이슈거리만 가지고 전개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의문점"으로 시작했다고 회고했다. 하지만 우리의 독자들은 역사의 구체적인 사실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다. 조금만 들어가도 외면을 해버린다. 저자는 오마이뉴스에 연재할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었다. 기사 한건 쓰는 데 일주일 정도 공을 들여 사료를 찾고 사진을 모은다. 그런데 조회수가 300이 안 된다. 그래서 오마이뉴스에서도 '잉걸'의 원고료인 2,000원밖에 안 된다. 갑자기 동질감이 확 올라온다. 나도 그 수많은 잉걸숲을 헤매고 있는 심정 아닌가.

그래서 저자는 생각을 고쳐먹게 되었는데, "사람들한테 사랑을 받지 못하는 글이라면 되겠는가?" 하는 마음으로 사람들이 관심을 갖거나 가질 만한 이야기들을 찾아다니고 이를 주로 소개했다. 효과가 금방 나타났다. 300건이던 조회수가 4만 건으로 늘어났다. 엄청난 폭발력이다. 기자들이 표현하는 바에 따르면 제목이 '섹시하다'고 하는데, 섹시한 제목으로 사람을 좀 끌어모았다고 저자는 좀 쑥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고백했다. 그런데 거기가 다가 아니다. 섹시하게 10회 정도 쭉 연재하다가 좀 어려운 글을 시험삼아 써봤는데 몰려오더라는 거다. 하기야 한비자는 그의 역작 <한비자>에서 유세의 어려움을 논증한 후 "군주의 마음을 얻은 이후에는 어떤 말을 하든지 설득할 수 있다"고 결론을 맺었다. (세난편) 또한 중국의 유명한 음악가는 불멸의 곡을 만들었노라고 사람들은 한껏 낚고 나서 저잣거리 한가운데서 악기를 패대기치는 버라이어티쇼를 펼침으로써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지 않는가. 마케팅 전공자다운 타고난 감각이 감탄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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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 : 애기살(편전)을 직접 들고 와서 뛰어난 성능을 자랑하고 있는 저자. 보통 활의 1/4밖에 안 되지만, 1초에 10m 더 빨리 날아가고 보통 활보다 두 배 더 긴 600m나 날아간다.> 

나는 왜 자꾸 '딴지'를 거는가?

 첫 작품이 내용상 넓고 얇은 면이 있어 이른바 '맛보기'라고 규정한 저자는 후속작에 대한 얼개를 보여줬다. 예컨대 안경 하나만 가지고도 무한히 확장할 수 있다. 이탈리아에서 왔고 재질과 형태, 안경집의 모양으로 반상을 구별하는 방법, 안경을 훔친 도둑들과 이를 넘겨받는 장물아비에 관한 구체적인 기록들이 나온다. 이것만 모으면 하나의 안경문화사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정조가 안경을 썼다는 사실도 예사롭지 않다. 정조가 왜 안경을 썼겠는가. 책을 많이 읽어서 그렇다. 보르헤스는 장님이 되었다지 않는가. 왜 책을 그렇게 많이 읽었겠는가. 저자는 어떤 콤플렉스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정조에게는 똑똑한 조정의 신하들보다 더 똑똑해야 한다는 지상과제를 가슴 속에 담아두고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주욱 나아간다.

한편 저자는 드라마의 디테일에 관해서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실제로 오마이뉴스에 기고한 그의 기사에는 드라마의 장면에 대한 딴지걸기가 적지 않다. 간담회에서 소개한 딴지걸기를 간단히 문답형으로 정리했다.


- 태왕사신기에서 활을 두세 발씩 쏘지 않나? 폼나게~
"활에는 기본 장력이 있어서 두 발을 한꺼번에 쏘면 1/3로 힘이 줄어든다. 그러면 적을 잡을 수 있겠는가?"

- 사극에서 불화살을 멋드러지게 쏘아서 승전고를 올리는 장면이 있다.
"불을 달건 그렇지 않건 간에 화살은 초속 75m로 날아간다. 불이 남아날 수 있겠는가? 조선시대의 화전은 그런 방식이 아니다. 심지에 불을 붙인 방식인데, 심지가 끝나면 자개통이 터져서 불이 난다. 보이지 않게 박혀서 터지고 타는 꼴인데, 좀 시시하긴 하다."

- 여성의 치마저고리가 가슴께까지 아슬아슬하게 올라온다.
"조선 전기에는 풍성하게 허리까지 다 덮는다. 하지만 조선 후기에 기방으로 흘러가서 패션리더인 기녀들이 길이를 '거기'까지 짧게 올린 것이다."

수많은 이야기가 있었지만 이하 생략한다. (더 궁금하신 분들은 오마이뉴스에서 저자의 이름을 검색하시길) 저자는 왜 이렇게 드라마에 딴지를 거는 걸까? 반겨주는 사람도 없을 텐데. 그는 대답 대신 '트로이'라는 영화를 예로 들었다. 트로이 영화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는 '등자'라는 것이 없었다. 등자는 말에 오를 때나 타고 있을 때 기수의 발을 받쳐주는 역할을 하는데, 요컨대 말에 올라탄 기병에게 디딜 '땅'이 생긴 것이다. 등자의 등장은 전쟁의 국면을 획기적으로 전환해 주었다. 그러나 주몽의 시대에는 안타깝게도 등자가 없었다. 그런데 드라마에는 등자가 나온다. 이에 비해 트로이의 연출들은 시대상황을 고려해 배우들에게 등자 없이 말을 타도록 지도했다. 물론 등자가 없으면 엄청 힘들다. 저자에 의하면 길게는 3~4년 정도의 숙련기간이 필요하다고 한다. 외국 영화와 한국 드라마의 사소한 차이이지만, 작은 차이라고 해서 무시를 해버리면 답이 안 나온다는 것이 저자의 생각이다. 이런 식으로 계속 가면 역사가 완전히 뒤집어져 바꿀 수 없게 된다는 것이다. 최근 조사에 의하면 "사극을 통해 역사교육이 얼마나 이루어진다고 생각하십니까?"라는 질문에 응답자들은 7~80% 정도라고 답변했다고 한다. "드라만데 어때?"라고 반문할 수도 있지만, 무의식을 지배하는 드라마의 이미지들은 우리가 역사라는 탄탄한 대지 대신, 출처가 불분명한 판타지 공간 위에 서 있기를 강요한다. 저자의 이런 말에 그 동안 무심했던 게 다들 살짝 부끄러웠나 보다. '딴지'를 거는 대목에서는 모두들 눈에서 빛이 났다.

지독하게 돈이 안 된다는 역사학, 그 중에서도 변방인 기병에 관한 역사. 살짝 비켜나면 돈이야 벌 수 있겠지만, 그렇게 하기가 싫어서 그 고생을 한다는 저자를 간담회가 끝나고 '2차'까지 붙잡아두었다. 갓 태어난 아기를 간만에 만나러 간단다. 저자가 길에서 비켜서지 않고 뜻한 바대로 정도로 계속 갈 수 있게 되었으면 하고 막연하게 바라며 돌어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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