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대학이 개성 있는 대학으로 거듭난다면

그 움직임은 아마도 대학도서관으로부터 시작"

 

 

 우리나라 대학들은 우리나라 도시들과 닮은 데가 있다. 이름도 각각이고 지역도 각각이지만 실상은 그리 다르지 않다는 점에서 그렇다. 우리 대학을 비롯한 국내의 유서 깊은 대학들은 처음에는 서로 다른 교육 철학을 가지고 창립되었고 각자 이런저런 특성을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이나 현재는 이념, 학제, 정책 면에서 별로 차이가 없다. 우리 대학은 교육부의 대학 정책과 대학 교육 시장 동향에 따라 대학 구조를 조정하고 중점 사업을 추진하면서 언제부터인가 우리 대학 고유의 성격을 많이 잃어버렸다

 

 

"우리 대학 고유의 뭔가가 아직 남아있다면 그곳은 무엇보다도 도서관"

 


 내가 보기에, 우리 대학 고유의 뭔가가 아직 남아 있는 곳이 있다면 그곳은 무엇보다도 도서관이다. 도서관에 가면 한동안 국내의 한국학과 동양학의 주류를 이루었던 우리 대학의 독특한 학풍의 흔적이 뚜렷하게 남아 있다. 불교학자료실이나 개인 문고의 서가 사이를 오가며 귀한 고서와 외서(外書)들을 손 안에 펴고 보면 우리 대학이 한 세기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는 실감이 나고, 우리 대학에서 대대로 학문을 연마한 사람들의 소망과 열정이 몸속으로 전해져오는 듯한 느낌도 든다. 

 

 

"국내 한국학과 동양학의 주류가 불교학자료실이나 개인문고에서 느껴져" 

 


 우리 대학의 개인 문고 중에는 세상에 내놓고 자랑해도 좋을 만한 것이 있다. 그 중 하나가 도전문고다. 도전이라는 이름은 그 문고의 기증자인 도전건차(島田虔次)에서 따온 것이다. 도전건차, 즉 시마다 겐지(1917-2000)는 교토대학에서 오랫동안 교편을 잡고 중국사상사연구를 진흥시킨, 전후 일본 동양학의 대가 중 한 사람이다. 오래 전에 한국어로도 번역된 『주자학과 양명학』을 비롯한 그의 논저는 세계 각국어로 번역되어 중국사상사연구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다. 생전에 우리 대학의 학풍에 애정을 가졌던 시마다 선생의 유지에 따라 기증되었다는 그의 장서 중에는 대략 1980년대 후반까지 동서양의 여러 언어로 출판된 중국학과 동양학 분야의 귀중한 자료집과 연구서가 상당수 들어 있다. 우리 대학 내에도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이지만 규모와 품질 면에서 도전문고에 견줄 만한 컬렉션이 국내의 다른 대학에는 없다.

 

 

"특히 도전문고(시마다 선생 기증 컬렉션)는 규모와 품질 면에서 국내 최고의 문고"

 


 대학 도서관은 기업도서관이나 구청도서관과 다른 것이다. 특정 사업이나 대중 소비를 겨냥한 정보 수집과는 다른 목적을 대학 도서관은 가지고 있다. 당장 쓸모가 있을 것 같지 않은 자료라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을 것 같은 문헌이라도 그것이 대학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학문  창달에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대학에서는 보유하고 있어야 한다. 그렇게 하려면 도서 확보에 필요한 재정은 물론, 학문을 존중하고 도서를 사랑하는 마음이 대학 사회에 갖춰져 있어야 한다. 우리 대학 도서관에는 그러한 마음이 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건재한 것 같아 이만저만 다행스럽지 않다. 우리 대학이 개성 있는 대학으로 거듭난다면 그 움직임은 아마 도서관으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글 / 황종연 (국어국문문예창작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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